한반도 최남단 해남반도의 두륜산
두륜산도립공원은 한반도의 마지막 끝에 우뚝 선 두륜산 일대에 지정된 자영공원으로 두륜산은 해남군 삼산면 현산면, 북평면, 옥천면, 등 5개면이 인접하고 있다. 두륜산은 상록활엽수와 온대성 낙엽활엽수들이 숲을 이루고 식물분포학상 중요한 가지를 지니고 있어 1979년 12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도립공원 안에는 대흥사를 비롯하여 여러 암자 등 문화유적이 분포하고 있으며 총 면적은 33,390제곱km로 두륜산 대흥사 일원은 국가문화재 사적 508호 및 명승 66호로 지정되어 있다. 두륜산 가련봉(703m)을 주봉으로 하여 두륜봉(630m), 고계봉(638m), 노승봉(688m), 등 8개의 봉우리가 능선을 이루고 있다. 8개의 봉우리는 둥근 원형으로 마치 거인이 남해를 향해 오른손을 모아든 듯한 형상이다. 오른손을 가지런히 펴고 엄지를 집게손가락에 붙인 다음 손가락 끝을 당겨 오목하게 물을 받들듯 만들면 영락없이 두륜산의 형세가 된다. 두륜산은 대둔산이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산이란 뜻의 '듬'과 크다는 뜻의 관형어 '한'이 붙어 한듬~대듬~대둔으로 변한 것으로 풀이된다. 때문에 현재의 대흥사는 근대이전에는 대둔사, 또는 한듬절로 불리기도 했다. 대둔사지에 의하면 중국 곤륜산의 륜과 백두산의 두 자를 따서 두륜산이라 썼다고 한다. 두륜산은 북서쪽으로 경사가 완만하고 경관이 수려하며 코스가 험하지 않아 2~3시간정도면 정상인 가련봉에 오를 수 있다. 또한 9개의 계곡에서 흘러내려오는 많은 물과 함께 두륜산 입구에서 대흥사까지 10리숲길의 장춘동계곡은 동백나무숲이 유명하여 왕벚나무 (천연기념물 173호)가 자생하고 있으며, 그 외 후박나무 등 다양한 상록활엽수림의 식물군이 분포하고 있다. [해남문화관광 제공]
▼ 두륜산 산경도
▼ 산행 지도(적색: GPS 궤적)
산행코스는 쇄노재를 들머리로 시작하여 등산로 안내푯말-바위 슬랩지대-위봉-투구봉 갈림-비암재-도솔봉 갈림-두륜봉 입구 삼거리-이정표-두륜봉-구름다리-만일재-가련봉-북미륵암. 천연수 갈림-노승봉-노승봉 아래 헬기장-오심재-북미륵암-대흥사-일주문-피암교-영내 서틀버스 종점-집단시설 주차장 순으로, 도상 거리 10.6Km, GPS Logger 궤적거리 13.15Km를 산행하였다.
▼ 산행 들머리, 쇄노재 성도사 입구
▼ 산행 들머리에서 산행 전 몸 풀기 체조
▼ 등산로 안내판, 안내가 아니라 경고성 푯말을 따라 위봉으로 올라간다.
▼ 위봉 오름길 바위 슬랩지대
▼ 바위 슬랩지대에서 산행들머리 쇄노재를 내려다본다.
▼ 쇄노재 줌~인
▼ 완도가 가깝게 조망된다.
▼ 완도를 줌으로 당겨본다.
▼ 진행방향 오른쪽에 조망되는 웅장한 투구봉
▼ 투구봉 상부 줌~인
▼ 진행방향의 위봉을 올려다본다.
▼ 동해 저수지와 그 뒤로 가공산. 달마산 조망
▼ 가공산 줌~인, 왼쪽 뒤로 달마산과 도솔봉 통신시설이 조망된다.
▼ 위봉 오름길은 바위 슬랩지대의 연속이다.
▼ 오름길에 진달래가 반기며 수줍어한다.
▼ 위봉 도착, 멀리 두륜봉. 가련봉이 나타난다.
▼ 두륜봉(왼쪽). 가련봉(오른쪽)을 줌으로 당겨본다.
▼ 위봉을 통과하면서 대둔산(도솔봉)을 조망한다.
▼ 웅장한 투구봉을 내려다본다.
▼ 두륜봉(직진). 투구봉(오른쪽) 갈림길
▼ 갈림길을 지나면서 위봉을 뒤돌아본다.
▼ 오늘 산행의 하일라이트 투구봉을 통과해서 아쉬움으로 자꾸 돌아다본다.
▼ 투구봉 줌~인, 투구를 쓴 장군의 모습과 흡사하다.
▼ 위봉에서 두륜봉으로 이어지는 비암재 능선의 기암
▼ 비암재 능선의 521봉 조망
▼ 위봉에서 두륜봉으로 가는 능선길은 암봉과 진달래꽃 산죽길이 반복된다.
▼ 능선길 521봉에서 지나온 길을 뒤돌아본다.
▼ 위봉 줌~인
▼ 위봉 서쪽 사면에 조새바위가 조망되고 오른쪽으로 땅끝기맥 연봉이 늘어서 있다.
▼ 능선을 걸으면서 대둔산(도솔봉)과 도솔재. 띠밭재 조망
▼ 도솔봉 통신 중계탑을 쭉~ 당겨본다.
▼ 능선 521봉에서 두륜봉. 가련봉 조망
▼ 두륜봉 줌~인
▼ 가련봉 줌~인
▼ 강진 좌일벌 방향 조망
▼ 강진만. 고금열도 방향 조망
▼ 가련봉 동쪽 사면과 오소재 방향 조망
▼ 오소재 방향 줌~인, 그 뒤 월출산(12시 방향 끝선)이 조망된다.
▼ 땅끝기맥의 주작산. 덕룡산 연봉
▼ 능선을 걸으면서 두륜봉. 가련봉 조망
▼ 두륜봉. 만일재. 가련봉 줌~인
▼ 예쁜 진달래꽃이 피어있는 능선길
▼ 능선길의 486봉
▼ 도솔봉 갈림길 삼거리 도착, 내 배낭이 발라당 뒤로 누웠다.
▼ 삼거리에서 도솔봉. 띠밭재 방향 조망, 거북이도 능선에서 봄볕을 즐긴다.
▼ 두륜봉을 오르면서 지나온 능선을 뒤돌아본다.
▼ 두륜봉 오름길의 기암
▼ 두륜봉 오름길 고개 직벽 로프 구간
▼ 직벽을 올라가는 일행 부부
▼ 건너편 봉우리 직벽에 설치된 로프
▼ 직벽 고개를 통과해서 뒤돌아본 건너편 봉우리
▼ 직벽 암봉 위에서 두륜봉 조망
▼ 두륜봉 줌~인
▼ 직벽 봉우리를 통과~ 능선길을 오르면서 두륜봉을 올려다본다.
▼ 두륜봉 입구 삼거리, 여기서 두륜봉을 올랐다가 돌아와서 만일재로 가야한다.
▼ 삼거리에서 수직에 가까운 철계단을 올라온 후 구름다리 아래로 통과한다.
▼ 두륜봉의 진불암. 두륜봉 갈림 이정표
▼ 두륜봉(해발 630m) 도착
▼ 눈사람아저씨 두륜봉 인증삿
▼ 두륜봉에서 위봉. 비암재 방향 조망
▼ 대둔산(도솔봉) 방향 조망
▼ 고래가 사랑을 하고 있는 듯 한 바위 뒤로 대흥사
▼ 가련봉(오른쪽). 노승봉(중앙). 고계봉(왼쪽) 조망
▼ 노승봉(왼쪽). 가련봉(오른쪽) 줌~인
▼ 위에서 내려다 본 구름다리
▼ 구름다리 위 일명 잠수함 잠망경 바위
▼ 두륜봉에서 돌아 나가면서 다시 본 구름다리, 코끼리 코와 정말 흡사하다.
▼ 두륜봉 입구 삼거리로 내려와서 왼쪽방향 만일재로 간다.
▼ 만일재와 그 뒤로 가련봉 노승봉
▼ 만일재 줌~인
▼ 만일재에서 두륜봉을 뒤돌아본다.
▼ 가련봉 오름길의 너덜지대
▼ 가련봉 오름길 암봉 위의 원앙바위
▼ 가련봉 아래 철계단과 안전시설
▼ 두륜산의 주봉 가련봉 도착
두륜산의 전설: 아득한 옛날 조물주가 금강산을 만들 때 전국의 신령들에게 좋은 바위들을 가져 오라고 하였는데, 이곳에 거주하고 있던 한 신령님이 남해 바다에 흩어져 있던 바위들을 그물을 던져 한곳에 모은 후에 그물을 잡고 금강산으로 가는 도중, 너무 많은 바위들이 담겨서 끌고 가다 보니 그물 일부가 찢어져 흘러나온 돌이 달마산, 두륜산을 이루고 월출산을 이룬 다음에야 그물이 찢어진 것을 발견하였는데 그 신령님은 그물을 꿰매어 나머지 돌들은 금강산으로 가져갔다고 한다.
▼ 눈사람아저씨 가련봉 인증삿
▼ 가련봉에서 투구봉. 위봉 조망
▼ 가련봉 아래 천연수 조망
천년수 전설: 아주 옛날 옥황상제가 사는 천상에 천동과 천녀가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어느 날 천상의 계율을 어겨 하늘 에서 쫓겨나게 되는 무서운 벌을 받게 되었다. 이들이 다시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하루 만에 바위에다 불상을 조각하는 일이었다. 천동과 천녀는 하루 만에 불상을 조각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해가지지 못하도록 만일암(해를 당기는 암자)터 앞 천년수에 끈으로 해를 달아매 놓고 천녀는 북쪽바위인 북미륵암에 좌상의 불상을 천동은 남쪽바위인 남미륵암에 입상의 불상을 조각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천녀는 앉은 모습을 조각하였기 때문에 입상을 조각한 천동보다 먼저 불상을 조각하였다. 미륵불을 완성해 놓고 한참을 기다려도 완성하지 못한 천동을 기다리지 못해 천녀는 빨리 올라가고 싶은 욕심에 그만 해를 매달아 놓은 끈을 자르고 혼자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이로 인해 천동은 영원히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이 미륵은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수목이다.
▼ 천연수 줌~인
▼ 대흥사 본찰 줌~인
▼ 노승봉. 고계봉 조망
▼ 노승봉. 고계봉 줌~인
▼ 노승봉 아래 북미륵암. 천년수 갈림 지점의 고개
▼ 노승봉을 오르는 눈사람아저씨
[들꽃향기님 제공]
▼ 노승봉(일명 능허대) 도착
▼ 노승봉에서 지나온 가련봉 조망
▼ 두륜산을 조망중인 기암
▼ 오소재와 주작산. 덕룡산 조망
▼ 들꽃향기님. 바보남님. 초야님, 가련봉에서 만나 날머리까지 쭈~욱 산행을 같이하였다.
▼ 노승봉 내림길 통천문
▼ 통천문을 내려오는 일행들, 일명 산고바위(출산바위)라고도 한다.
▼ 노승봉아래 헬기장으로 가는 길목의 석류알 같은 바위
▼ 노승봉 아래 헬기장
▼ 등산로 옆에 일명 기차바위 위에 앉아있는 철새 같은 바위
▼ 오심재 도착
▼ 오심재 이정표
▼ 북미륵암 도착, 멀리 삼층 석탑이 보인다.
▼ 북미륵암의 용화전
▼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면 땀을 흘린다는 용화전의 마애여래좌상
[자료사진]
북미륵암 용화전 내부에 신라 하대에 조성된 마애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높이 4.2m의 거대한 마애불로, 보물 제48호로 지정되었다가 2005년 국보 제308호로 지정되었다. 구전에 의하면 노승봉 아래에는 북미륵과 남미륵이 있었으며, 북미륵은 볼록하게 돋을 새김 한 양각불상임에 비해 남미륵은 평평한 곳에 선을 이용한 음각불상으로 그 모습이 대조적이었다고 한다. 양각의 북미륵은 여자가 조성하고 음각의 남미륵은 남자가 조성한 것으로, 이들은 모두 제석천이 하강하여 남북에 음양의 조화를 기하기 위해 조성한 것이라 전한다. 북미륵암의 마애여래좌상은 연화대좌 상부에 결가부좌한 모습으로 항마촉지인을 결하고 있으며, 상체에 비해 하체가 왜소한 모습이다. 상호는 풍만하면서 원만한 모습으로 소발의 머리 위에는 육계가 뚜렷하게 솟아 있으며, 짧은 목에는 형식적인 삼도가 표현되어 있다.
▼ 북미륵암을 내려오면서 뒤돌아본다.
▼ 대흥사 경내 보호수 느티나무, 수령 500년 연리근
▼ 대흥사 대웅보전
대흥사는 조계종 22교구 본사로 규모가 큰 대찰로 대둔사(大芚寺)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절의 기원은 426년 신라의 승려 정관이 창건한 만일암이라고도 하고, 또 진흥왕 때 아도화상이 창건 했다고도 한다. 대흥사는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가 거느린 승군의 총본영이 있던 곳으로 유명하다. 조선시대에 억불의 탄압 속에서도 13인의 대종사와 13인의 대강사를 배출시킨 명사찰로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의 화를 입지 않고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 보전하고 있는 십승지중 하나라고 한다. 대웅전과 오른쪽 응진당 사이의 윤장대가 있다. 윤장대는 세 번을 돌리면 소원이 성취된다고 한다.
▼ 대흥사에서 조망하는 두륜산
이곳 조망 안내판 설명에 우측의 두륜봉은 누워계신 부처님의 머리요, 가련봉과 노승봉은 부처님의 손이며, 고계봉 오름 길은 부처님의 다리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런 것도 같다.
▼ 해 탈 문
해탈문(解脫門),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수미산 정상에는 제석천왕(帝釋天王)이 다스리는 도리천이 있고 그곳의 경계에 불이문(不二門)이 있다고 한다. 그 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속계를 벗어나 법계에 들어가게 되며 이는 곧 해탈의 경지를 상징한다. 대흥사 해탈문엔 사천왕상이 없고 코끼리를 타고 있는 동자승이 계신다. 대흥사에 사천왕상이 없는 이유는 북으로는 영암 월출산, 남으로는 송지 달마산, 동으로는 장흥 천관산, 서로는 화산 선은산이 대흥사를 감싸고 있기 때문에 풍수적으로 완벽한 형국을 취하고 있어 사천왕상이 세워져 있지 않다고 한다.
▼ 일 주 문
▼ 피암교와 그 뒤 유선장 여관
유선장 여관 : 남도의 아름다운 사계를 배경으로 소리꾼 일가의 애달픈 삶과 득음에 대한 집념을 그린 영화 서편제가 우리나라 영화사상 2백 만 명의 관객동원이라는 성공을 거두면서 서편제의 촬영지 또한 많은 관심을 모았다. 해남은 여러 곳에서 서편제 영화가 촬영되었는데 그 중 가장 많은 촬영을 하였던 곳이 대흥사다. 대흥사는 소리고개를 비롯하여 유선여관에서 서편제의 주요장면이 비중 있게 촬영되었다. 두륜산 중턱 해발 500m 지점의 공터에 위치한 곳에 소리 재에 오픈 세트가 지어지고 이곳에서 수려한 두륜산을 배경으로 소리를 하는 송화(오정해역)의 애절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또한 유선장 여관에서는 대갓집 잔치에서 유봉(김명곤역)이 어사출도(춘향가)대목을 부르는 장면, 북치는 법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 등이 촬영되었다. 잔칫집의 흥에 겹고 술렁이는 분위기가 촬영될 때는 해남의 주민들이 직접 엑스트라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유선여관은 예전부터 국악인들이 자주 모여 산 공부를 하거나 소리판을 벌였던 해남 국악의 유서 깊은 곳으로도 의미가 깊다. 그 외 천년학, 장군의의 아들, 1박2일 등이 촬영된 명소이다.
▼ 산행 고도표(거리별)
▼ 산행 고도표(시간별)